전남 여수 출신 박금산 작가 'AI가 쓴 소설' 출간
"AI, 기사 번역 수준 높아…문학 작품이 AI의 끝단
""소설 쓰는 AI를 넘어 AI에게 읽힐 작품 만들어야"
"'정신 차리고 말해!' 그녀는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몸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남는 시간이 더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숨을 쉬지 않고 말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녀는 나를 믿지 않았다."
로맨스 소설 '설명하려 하지 않겠어'의 한 구절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다. AI 기업 ‘포자랩스’는 이 소설로 지난 2018년 KT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개최한 AI 소설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최근 자연어 처리 기술인 오픈AI의 'GPT-3'가 AI 업계의 화두이다. GPT-3는 시와 소설, 기사까지 써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언어로 질문에 답도 할 수 있을 정도다. AI와 인간이 문학 작품 시장에서 베스트셀러 경쟁을 하는 시대도 머지않아 보인다.
한편 AI 소설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은 AI 작가가 쓴 AI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남 여수 출신 문학 작가 박금산씨(49)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작가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실제 AI의 창작 실력을 소재로 해 소설 ‘AI가 쓴 소설’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전업 소설가 C씨는 출판사에서 파트 타임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 C씨가 맡은 업무는 출판사 대표가 넘겨준 소설 원고를 읽고 평을 하는 것이 전부다. C씨가 업무를 시작하고 이상하게 느낀 점이 있다. 출판사 측에서 작가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고, 리뷰를 하는 대로 금세 그의 의견이 반영된 새로운 원고가 쓰여진다는 것이다.
C씨는 고쳐진 원고를 읽으며 인간이라면 이렇게 빠르게 글을 쓸 수 없다는 생각에 의심이 커진다. 그렇다면 작가의 정체는 뭘까? C씨는 AI가 쓴 글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AI가 쓴 소설은 인간이 쓴 것과 무엇이 다를까? 또 독자들은 AI가 쓴 문장과 인간이 쓴 문장을 가려낼 수 있을까. 다음은 박금산 작가와의 일문일답.
Q. AI가 쓴 문장과 인간이 쓴 문장을 가려낼 수 있나.
A. 2021년 현재는 가능하다. 미래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현재 AI가 기사를 번역하는 것을 보면 이 문장이 전문 번역가가 하는지, 기계가 하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마 문학의 문장 형식이 AI가 도전하는 가장 끝단이 아닐까 생각된다.
Q. AI를 소재로 소설을 쓴 계기가 무엇인가.
A. 7~8년 전, 개인적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 힘들고, 잘 풀리지 않는 시기가 있었다. 이 때 '창작하는 AI가 있었으면 좋겠다', '보조를 수행하는 AI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이 있었다. 소설을 쓰다 보니 철학적인 명제들을 가지고 고민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머리가 복잡했다. 문득 이왕 이렇게 된거 AI가 쓰는 소설이라는 테마로 한번 써볼까 마음먹게 됐다.
Q. 소설을 쓰는 과정은 어땠나.
A. 소설가 입장에서 바라볼 때 분명 향후 AI와 경쟁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고유적인 것을 창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뚜렷하게 정해놓고 소설을 쓴 것은 아니다. 가상의 작품 속 AI와 대화를 하면서 썼다. 그러면서 인류에 도움이 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됐다.
Q. AI 소설가의 등장으로 인간 소설가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A. 소설 속에서도 밝혔지만, 전혀 위축될 일을 아니라고 본다.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는 대회가 개최되는 것을 보고, 이제 AI가 소설을 쓰는 건 더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저의 모습을 써보고자 마음먹었다. 저는 문명친화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른 이들은 소설 쓰는 AI가 등장하면 작가들의 생업이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 독자들이 인간과 AI의 소설을 시장에서 선택하는 미래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아가 이왕이면 좋은 소설을 쓰는 AI가 많이 나오면 좋겠고, 그 과정을 돕는 인간 작가도 필요해 보인다.
Q. AI가 인간의 편견까지 학습해 소설을 쓸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향후 문학계 딜레마가 될 것 같은데.
A. 그런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인간 소설가들이 더욱 활약해야 한다. 나아가 저는 AI가 소설을 읽는 시대까지를 내다보고 있다. 소설을 쓰는 AI에서, 소설을 읽는 AI를 상상하고 있다. 결국 AI에게 좋은 소설이 읽힐 수 있도록 인간 작가들이 좋은 소설 쓰는데 매진했으면 좋겠다.
Q. 'AI가 쓴 소설' 작품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이라 생각하는지.
A. 편하게 읽혔으면 좋겠다. 독자들이 소설과 노동의 관계를 이번 기회에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본다.
Q.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래 소설가를 꿈꾸고 있는 제자들 반응이 궁금하다.
A. 책이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생들이 아직 접하지 못 했을 것이다. 9월 개강 이후 학생들과의 만남이 설레는 이유다. 학생들과 AI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 저는 늘 학생들에게 AI 창작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Q. 향후 계획에 대해 말하자면.
A. AI 소설 창작을 주제로 한번 더 글을 써보고 싶다. 예컨대 이제는 AI에게 어떤 소설을 쓰라는 주문을 한다는 등의 내용이 될 수도 있다. 저는 작가로서 새로운 시선을 갖추기 위해 AI 창작 엔진 기술자를 찾아 취재를 해나갈 것이다. 개발 과정에 들어가 참여하고 싶다. 문학 창작자가 개입해서 엔진을 만든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나아가 그런 과정에 작가로서 기여하고 싶다.
Q. 목표는 무엇인지.
A. 세계에 기여하는 존재로서의 작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시든 소설이든 인간이 만든 것을 자동으로 혹은 주체적으로 학습하는 AI, 학습 뿐만 아니라 느끼는 AI를 고려해야 한다. 한글 사용자가 적기 때문에 한글로 창작하는 작가들의 독자는 비교적 적다. 그러나 앞으로 AI 독자가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보면 독자가 크게 늘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금산 작가 1972년 여수에서 태어난 박금산 작가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공범’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장편소설 ‘존재인 척, 아닌 척’ ‘아일랜드 식탁’ ‘남자는 놀라거나 무서워한다’, 연작소설 ‘바디페인팅’, 소설집 ‘생일선물’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등을 발표했고, 2016년 오영수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AI타임스 유형동 기자 yhd@aitimes.com
Copyright © '인공지능 전문미디어' AI타임스 (http://www.ai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